8조원 KDDX 앞에서 멈춘 방사청…‘K방산 원팀’ 시험대 오르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출처: 중앙일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자가 좀처럼 정해지지 않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물러섬 없는 수주전을 벌이면서, 방위사업청도 결정을 미루는 모양새다. 8조원에 달하는 대형 국책사업 앞에서, ‘K방산 원팀’ 전략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당초 방사청은 3월 27일 ‘사업분과위원회(사분위)’를 열고 KDDX 1번함 사업자 선정 방식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이틀 전인 25일 전격 취소했다. 사분위는 4월 2일로 다시 소집되지만, KDDX 안건은 상정되지 않는다. 방사청은 4월 중순 재논의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불투명하다.
KDDX는 총 7조8000억 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6000톤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선체부터 전투 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구현하는 첫 순수 국산 구축함이라는 점에서 상징성과 전략성이 크다.
문제는 사업 방식이다. 방사청이 수의계약을 택할 경우,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유리하다. 반면 경쟁입찰로 가면 최근 기밀 유출로 감점이 적용되는 HD현대보다는 한화오션에 기회가 돌아간다. 승자독식 구도가 뚜렷하다 보니, 어느 쪽이 낙점되든 불복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민간 위원들의 반발로 사분위 일정이 밀린 것도 이 같은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방사청 내부에서는 “수의계약이 기술적 연속성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경쟁 원칙 훼손과 불공정 논란이 부담이다.
이런 가운데, 방사청이 상생형 절충안을 검토 중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D현대가 상세설계를 주도하되, 한화오션도 일부 참여하도록 하고, 선도함을 기존 1척이 아닌 2척으로 동시 발주해 두 기업에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다. 공동설계 가능성까지 거론되지만, 건조 방식이 다른 두 조선소의 협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각 그룹의 3세 경영자인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직접 해법을 조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두 기업은 지난해 호주 호위함 수주전에서 경쟁 끝에 ‘K방산 수출 원팀’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수상함은 HD현대, 수중함은 한화오션이 맡기로 한 협력 모델이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계가 과열 경쟁으로 흩어지면, 오히려 방산 수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방사청도 원팀 전략을 염두에 둔 만큼, 결국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DDX 사업은 단순한 수주전이 아니라, 향후 10년 한국 방산 기술력의 방향성과 수출 역량을 결정지을 분수령이다. 기술력, 공정성, 협력의 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