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스테이블코인 논의에서 놓친 부분 (1) 퍼블릭 블록체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뉴스알리미 · 25/07/03 10:01:21 · mu/뉴스

드디어 한국도 스테이블 코인이 제도화될 모양이다. 10년 가까이 블록체인 산업에서 일해온 종사자 입장에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블록체인 산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신기루, 투기꾼들의 쇼, 과장과 사기만이 난무하는 산업이라는 시각이 여전한 상황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화는 약간 어색하기도 하다. 진짜 이걸 도입하는, 아니 도입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그 동안 굳이 ‘가짜’라는 느낌을 주는 ‘가상 자산’이라는 용어를 도입하면서까지 부정적인 시각을 부여하려 했던 정부의 시각이 정말 바뀌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필자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우 스테이블 코인을 하지 않으면 수년 후 통화주권 보호, 글로벌 경제권 구축 등에 아주 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부분들은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기에 필자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해 잘 언급되지 않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것은 “스테이블 코인을 어느 플랫폼에서 발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정부와 업계는 발행 주체, 준비금 요건, 감독 기관 등에 대해서는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스테이블 코인을 어떤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없다. 마치 자동차 제조 정책을 논의하면서 도로 인프라는 언급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까…

트럼프 정부는 2025년 6월 17일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인 ‘지니어스(GENIUS) Act’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통화형 자산’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공식 거래수단으로 인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법안은 상원을 통과했고 하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미국이 승인 중인 이 스테이블 코인들은 거의 대부분 이더리움, 솔라나, 트론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 상에서 작동하는 것들이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하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인 USDT는 발행량의 46%가 트론에, 나머지도 이더리움, 폴리곤 등 다른 퍼블릭 블록체인에 분산되어 있으며, USDC 발행량의 82%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발행되어 있다. 결국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의 압도적 다수가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만이 아니다. 이미 유럽연합은 MiCA(Markets in Crypto-Assets) 규정을 통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허용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통화청이 공식 허용한 XSGD는 7개의 퍼블릭 블록체인-이더리움, 폴리곤, 아발란체, 헤데라, 아비트럼, 질리카, XRP Ledger-에서 작동한다. 이들 국가 모두 처음부터 퍼블릭 블록체인과의 연동을 전제로 정책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경제 생태계는 2010년 5월 22일 피자 두 판을 1만 비트코인으로 거래한 상징적 사건에서 출발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25년 6월 현재 전체 암호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은 약 3.5조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500조에 달한다. 새롭게 등장한 탈중앙화 기술 위에서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블록체인 개발자들, 암호화폐 애호가들, 탈중앙화 지지자들이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현상, 개별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단순한 투기 자산의 집합체가 아니다. 수만 개의 노드가 전 세계에 분산되어 24시간 365일 거래를 검증하고, 수천 개의 DeFi 프로토콜이 전통 금융의 기능을 재현하며, 전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가 참여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퍼블릭 블록체인 상에서 작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달러에 페깅된 디지털 토큰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정부가 퍼블릭 블록체인이라는 탈중앙화 인프라를 미국의 공식 금융 인프라로 승인한 것이다.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인정한 것이 상징적인 디지털 자산 수용이었다면, 스테이블코인 인정이 가지는 함의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스테이블 코인 수용은 미국 정부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탈중앙성으로 유지되는 신뢰, 글로벌로 분산되어 있는 노드 운영자 커뮤니티, 그리고 이를 지지하고 이를 통해 자산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모여 있는 암호화폐 커뮤니티를 인정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지구적 현상, 이전에는 없던 경제구조, 국경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를 인정함으로써 암호화폐 산업의 종주국, 패권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화는 바로 이 목적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대담한 행보 중 하나다.

반면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논의에서는 이 부분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계엄의 먹구름이 이제 겨우 걷히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아직 이 부분까지 고려할 여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동안의 정부 정책에 위배되는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국내 퍼블릭 블록체인 산업 자체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아, 퍼블릭 블록체인과 관련된 글로벌 패권은 우리가 추구할 목표가 아닐 것이라는 지레짐작 때문일까? 아니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과 관련하여 퍼블릭 블록체인이 중요한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라는 것이 아직 인지되지 않은 것일까?

스테이블 코인과 퍼블릭 블록체인의 밀접한 관련성으 피해갈 수 없다. 이미 글로벌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 시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것이 표준까지는 아니어도 일종의 당위, 의례 그러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허가 문제는 한국 정부가 퍼블릭 블록체인 산업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 등이 스테이블 코인 발행과 관련하여 퍼블릭 블록체인을 허용하는 방향을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이유,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통해 얻으려는 효과 또는 목적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스테이블 코인을 왜 도입해서 얻고자 하는 효과는 무엇인지, 스테이블 코인 도입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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