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모두가 증명하는 비전...서씽트의 ZK 2.0 시대

인터넷과 블록체인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2020년대 중반 기술의 확장성과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신뢰성은 그만큼 약화됐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 △블록체인 인프라의 반복된 해킹 사고 △정보 위조에 대한 경각심 증가는 “제공된 정보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세웠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학적으로 정당성을 입증하는 기술인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ZKP)이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서씽트(Succinct)는 이런 영지식 증명 기술을 기반으로 ‘증명 가능한 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한 범용 네트워크인 ‘서씽트 네트워크(Succinct Network)’를 구축하고 있다. 영지식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인터넷 전반의 신뢰 구조를 재설계하겠다는 것이 핵심 목표다. 이들은 영지식 기술이 어려운 기술이라는 인식을 깨고 누구나 코드 한 줄로 증명을 생성하고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서씽트 네트워크의 중심은 SP1이라는 이름의 범용 영지식 가상머신(zero-knowledge virtual machine)이다. 이 가상머신은 기존 ZK 시스템들이 요구했던 복잡한 회로 설계 없이도 러스트(Rust)나 C++처럼 널리 쓰이는 언어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변환해 증명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준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기존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증명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P1은 출시 이후 꾸준한 성능 개선을 이어 왔다. 2025년 상반기에 배포된 하이퍼큐브(Hypercube) 버전은 Jagged PCS와 LogUp GKR이라는 새로운 수학적 구조를 도입해 이더리움 메인넷 블록의 93%를 12초 내에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실시간 증명(real-time proving)’이라는 오랜 숙제를 처음으로 해결한 사례로 기록됐다.
또한 SP1은 성능 향상 속도에서도 눈에 띄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약 3~6개월마다 2배 이상 개선되는 곡선을 보이며 “영지식 증명에도 무어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말이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는 기술 진화의 가속화뿐 아니라 오픈소스를 통한 집단 지성의 재생산이 증명 인프라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서씽트 네트워크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구조라는 점은 ‘증명인(Prover)’ 시스템에서 잘 드러난다. 프루버는 증명을 계산하는 참가자를 뜻한다. 기존 블록체인의 채굴자 또는 스테이커처럼 증명 활동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서씽트는 이 증명 시장을 ‘증명 경매(Proof Contest)’라는 경매 구조로 설계했다. 사용자가 증명을 요청하면 전 세계에 흩어진 증명인들이 입찰에 참여한다. 특이한 점은 모든 참가자가 입찰 비용을 실제로 지불하는 ‘전액 지불 경매(All-pay auction)’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 방식은 낮은 가격으로 무조건 낙찰되는 구조가 아니라 입찰 금액의 α승에 비례해 낙찰 확률을 조절한다. 이를 통해 대규모 증명인 하나가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고 다양한 증명인이 지속해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입찰로 모인 토큰은 다시 사용자에게 리베이트로 환급되거나 네트워크 재투자에 활용된다. 이로써 네트워크는 경제적 인센티브와 기술 진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갖춘다.
서씽트 네트워크는 오프체인 옥셔니어(Auctioneer)와 온체인 합의 컨트랙트를 분리해 사용자의 경험과 보안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구조를 도입했다. 사용자는 웹2 수준의 빠른 응답 속도를 느낄 수 있지만 실제 증명 데이터와 자산 정산은 이더리움 메인넷이나 레이어2 상에서 안전하게 처리된다. 이 구조는 기존 L2 시퀀서나 롤업에서 발생한 검열 문제를 기술적으로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모든 구조는 $PROVE라는 토큰 하나로 운영된다. PROVE는 사용자가 증명 요청을 결제할 때 쓰이며 증명인은 이를 보상으로 받는다. 동시에 입찰을 위해 일정량을 스테이킹해야 하고 잘못된 증명을 제출하면 이 예치금은 슬래시(Slash)된다. 이중 보증 구조를 통해 증명인의 성실한 작업을 유도한다.
뿐만 아니라 PROVE는 거버넌스 권한도 함께 가진다. 증명 수수료율, 입찰 방식, 신규 기능 도입 등 네트워크 운영과 관련한 모든 사항은 PROVE 보유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서씽트는 패러다임 주도로 시드 및 시리즈A 투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5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서씽트의 SP1은 이미 다수의 프로젝트에 실제 적용되기 시작했다. △월드코인(WLD)의 월드체인 △폴리곤의 애그레이어(AggLayer) △셀레스티아의 블롭스트림 엑스(Blobstream X) △맨틀의 영지식 전환 △카타나 네트워크의 L2 인프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보안성과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SP1의 증명을 도입한 사례다.
서씽트 테스트넷도 빠르게 확산됐다. 총 15,000개의 테스트넷 입장 코드가 12시간 만에 마감됐고, 9만 5000건의 증명이 생성되며 약 20만 달러 상당의 사용료가 결제됐다. 디스코드 사용자 수는 19만 명, 깃허브 스타 1300개, 러스트(Rust) SDK 다운로드 17만 회 이상으로, 개발자와 커뮤니티의 참여도도 높은 편이다.
서씽트는 증명 시장의 규모가 장기적으로는 PoW 채굴 혹은 PoS 스테이킹 보상과 맞먹는 수십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롤업이 솔라나 수준의 트랜잭션 처리량(TPS)을 달성할 경우 트랜잭션당 0.001달러의 증명 수수료만으로도 연간 1억 5000만 달러가 네트워크에 유입된다.
ZK 기술이 실제 경제적 수익을 발생시키는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는 셈이다. 오라클·AVS·옵티미스틱 롤업 보증·브리지 구조 등 지금까지 경제적 담보를 필요로 했던 구조를 ZK가 대체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보안·수익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
물론 과제도 적지 않다. 첫째, GPU나 전력 사용량은 여전히 주요 비용이다. 이를 줄이기 위한 FPGA·ASIC 가속화와 자원 최적화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
둘째, 증명 시스템 자체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나 결함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서씽트는 이를 위해 TEE 기반 2FA 연동과 포멀 검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시스템 안정성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증명 경매의 각종 변수(입찰 하한, α 파라미터 등)는 아직 실험 단계로 게임이론과 네트워크 경제학에 기반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서씽트 네트워크는 누구나 증명을 요청하고 누구나 증명을 제공할 수 있는 글로벌 분산 인프라를 구현 중이다. 서씽트는 인터넷의 기본 구조를 ‘계산 결과도 검증 가능한 형태로’ 재설계하자는 목표를 가진다. 만약 이 구조가 정착된다면, 웹서비스는 사용자의 연령·자격·소득 등 민감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디지털 콘텐츠에는 생성 과정 전체를 증명한 메타데이터가 따라붙게 될 것이다.
“세계의 소프트웨어를 증명하다(Prove the World’s Software)”라는 구호는 써싱트가 미래 인터넷 인프라의 핵심 역할이 될 비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