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대한항공의 79조원 베팅, 트럼프의 관세 완화 이끌까
백악관서 대미 투자를 발표하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 (출처: Nikkei Asia)
현대차그룹과 대한항공이 총 7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구매 계획을 발표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구상에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현대차는 31조원에 달하는 미국 내 신규 투자 계획을 백악관에서 공식 발표했고, 대한항공도 최근 보잉·GE와 손잡고 48조원 상당의 여객기·엔진 구매 계획을 공개했다.
두 기업의 대규모 '선물 보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이 주요 경쟁국 대비 유리한 협상 지위를 확보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운다.
현대차의 발표는 특히 주목을 끌었다. 완성차 생산 확대, 자동차용 강판 생산 설비 신설, 소형모듈원자로(SMR) 관련 에너지 협력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에 정밀하게 조율된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 행사에서 현대차를 "진정 위대한 기업"이라 칭하며 공개적으로 환영했고, 이는 현대차가 트럼프의 관세 정책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음을 시사한다.
대한항공 역시 미국 제조업체와의 대형 구매 계약을 통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여기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협약식에 직접 참석하며 의미를 더했다. 특히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관세 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력에도 4월 2일 예정된 상호관세 시행을 완전히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무역 적자 및 관세 불균형을 이유로 ‘더티 15(Dirty 15)’ 국가들에 고율의 상호관세를 예고한 상황이며, 한국 역시 주요 대상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결국 관세 자체를 막기보다는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예컨대 EU에 20%의 상호관세가 부과되고, 한국에 10%가 적용될 경우 미국 내에서 한국산 제품의 상대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이 미국 측 인식을 개선하는 데 일정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결정이 극도로 집중된 상황에서, 관세 면제와 같은 실질적 조치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한 통상 당국자는 “트럼프가 현대차를 칭찬했다고 해서 관세 면제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희망적 사고”라며 “미국 내 생산이면 관세를 피할 수 있다는 기존 논리를 재확인한 수준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