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 유럽 금융주권 위협”…미카 개정 요구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의 암호화폐 산업 확대에 따른 유럽 금융시장 교란 가능성을 우려하며, 유럽연합(EU)의 암호화폐 통합 규제안인 미카(MiCA)에 대한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ECB는 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유럽 시장에 과도하게 유입될 경우, EU의 금융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22일(현지시간) 폴리티코가 입수한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ECB는 최근 발효된 미카가 현재의 글로벌 흐름을 반영하기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암호화폐 산업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유럽 내 확산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ECB는 이로 인해 유럽 자금이 미국 자산으로 이동하고, 유럽 은행들이 유동성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CB는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한 조건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은 반드시 EU에 등록된 발행사만이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카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ECB는 이 체계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ECB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복수의 외교관과 EU 관계자들에 따르면, 집행위는 미카가 이미 충분히 강력한 틀을 갖추고 있으며, 미국의 정책 변화만으로 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소수 국가만이 ECB의 우려에 동의하고 있을 뿐”이라며, 성급한 개정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ECB와 집행위 간의 시각 차이는 향후 디지털 유로(CBDC)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EU는 지난해 10월 디지털 유로 개발을 공식화한 바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유럽이 처음으로 암호화폐 규제 틀을 마련하며 선도적 위치에 섰지만, 미카의 과도한 제한이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트레이딩스트래티지의 공동창립자인 미코 오타마는 “EU는 규제에서 선수를 쥐었지만 그 기회를 망쳤다”며, EU 내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배경에 기존 금융권 로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책 분석가 니콜라스 앤서니도 “ECB는 디지털 유로 도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 없는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며 “미국이 암호화폐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유럽은 오히려 혁신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