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수수료 인하 논의 속 정치적 공약 등장

수익 구조가 수수료에 편중된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에 대해 정치권이 수수료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청년 공약 중 하나로 거래소들의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약 0.05% 수준인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수수료를 국내 주식 거래 평균 수수료인 0.015%까지 낮추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있는 만큼 그 수준까지 인하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자산 업계는 투자자 수수료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법적 제약으로 수익 다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인하 요구만 앞세우는 것은 산업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원화 거래소의 수수료는 약 0.05% 수준으로 글로벌 거래소와 비교해도 낮은 편에 속한다. 업비트는 0.05%의 고정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으며 빗썸은 기본 수수료가 0.25%지만 수수료 쿠폰을 사용할 경우 0.04%까지 낮아진다.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기본 수수료가 0.1%로 책정돼 있지만 자사 토큰인 BNB(바이낸스코인)로 수수료를 결제하면 약 25% 할인이 적용돼 실질 수수료는 0.075% 수준이다. 미국의 코인베이스는 일반 이용자 기준 최대 0.5%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주요 거래소와 비교해도 국내 수수료는 낮은 수준이지만, 정치권은 이를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 수준으로 더 낮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자산 거래소와 증권사는 수익 구조와 제도적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증권사들은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 외에도 자산관리(WM), 투자은행(IB), 자기자본 운용(PI), 이자 수익 등 다양한 수익원을 통해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예컨대 미래에셋증권의 2023년 기준 순영업수익 중 주식 매매 중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반면 디지털자산 거래소는 구조적으로 수수료 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지난해 약 1조7316억원의 매출과 1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올렸는데 대부분이 거래 수수료에서 발생했다. 같은 해 빗썸 역시 전체 매출의 99% 이상이 수수료 수익이었다.
국내 디지털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주식 매매 수수료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디지털자산 거래소는 그런 기반조차 없는 상태에서 수수료부터 깎으라는 건 산업 구조를 흔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계는 시장 침체기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 2022년 디지털자산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두 거래소 모두 실적이 눈에 띄게 줄었다. 두나무는 해당 해 1조2493억원의 매출과 130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빗썸은 320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수익 대부분이 거래 수수료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거래량 감소가 곧바로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확인된 셈이다.
이에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인하 논의에 앞서 거래소가 수익 구조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주요 거래소들은 비교적 유연한 규제 환경 속에서 이미 다양한 수익 모델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는 현물 거래 외에도 선물, 마진, 대출, 스테이킹, NFT 등으로 수익을 다변화하고 있다. 코인베이스도 기관 대상 수탁(Custody), 스테이킹 수수료, 구독형 서비스(Coinbase One) 등 거래 외 수익 모델이 다양하다.
국내 거래소 한 관계자는 “거래소들이 스테이킹, NFT 마켓 등 일부 부가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파생상품이나 대출과 같은 고수익 사업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아 본격적인 사업 전개가 어렵다”며 “정책적 목표가 수수료 인하라면 그에 앞서 거래소들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