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더와 서클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한국, 규제 공백에 발목 잡혀

국내 디지털자산 투자자는 1600만명을 넘어서며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지만,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여전히 공백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 가운데 테더가 규제 미비를 틈타 국내 진출을 확대하는 반면, 제도권에 발을 들인 서클은 한국을 우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규제 기준과 괴리된 현행 체계가 오히려 테더 의존도를 키우고 있으며, 향후 주요 시장 퇴출 시 국내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Tether)가 국내 시장 확대를 위한 인력 채용에 나섰다. 국내 디지털자산 투자자는 1600만명을 넘어서며 세계 2위 수준의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테더의 이번 채용은 이러한 국내 시장 성장에 발맞춰 디지털자산 업계 및 금융당국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반면 업계 2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Circle)이 출시한 실시간 송금 및 정산 시스템 서클 페이먼트의 파트너사 명단에는 국내 기업이 포함되지 않았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부재한 탓에 한국 시장 진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지급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될 경우, 통화 주권 침해와 기존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성 훼손 가능성을 꾸준히 우려해왔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디지털 금융 인프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 제도 정비를 통해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자산 사업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며 “이 경우 각국의 규제를 보다 원활하게 충족할 수 있어 해외 진출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최근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각국은 규제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자, 마스터카드 등 주요 결제 네트워크는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가능한 카드를 출시했다. 해외에서는 △무역 대금 결제 △유학비 송금 △외국인 노동자 급여 지급 등 다양한 실생활 영역으로 활용이 확장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거래소 이용 수단을 넘어 투자 외 보유 수요가 늘고 있다.
문제는 규제 공백 상태에서 글로벌 규제가 본격화될 경우다. 테더가 발행하는 USDT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약 6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가장 높은 사용 비율을 기록 중이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USDT 거래량은 약 58조원이다. 서클의 USDC 거래량 1조 9000억원보다 약 30배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테더는 유럽연합의 가상자산시장규제(MiCA)를 충족하지 못해 유럽 시장에서 상장이 제한됐다. 미국에서 추진 중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의 준비자산 요건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서클은 미카(MiCA) 기준에 따라 발행 면허를 취득했고 지니어스 액트 요건에도 부합한다. 이런 상황에서 테더가 주요 시장에서 퇴출되면 국내 시장도 직접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갑래 연구위원은 “국내 테더 유입이 압도적인 만큼 규제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규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